Posted by: Ben Kim | July 29, 2009

날치(기)와 정치

YMCA 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여보, 오늘 한국 뉴스 들었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 왜?… 북한에서 또 미사일 발사 했데?” 하고 내가 되 묻자, “아뇨…” 하고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봅니다. “무슨 소식인데… 또, 누가 시달리다 못해…” “아뇨. 한국 국회에서 의원들이 서로 육탄공격을 하면서 고함치고, 폭력을 자행하고, 심지어 집기를 서로 집어 던지는 테러 같은 장면이, 미국 전국에 방송되는 TV 뉴스에 방영이 되었어요. YMCA 에서 운동하면서 뉴스를 보게 되었어요.” 이 말을 듣고 나서, “아, 그래. 새로운 것도 아닌데, 뭐…. 오히려 그런게 없어면 이상하고 불안한게 한국 정치일걸… 이명박 정권 이전에는 그래도 조용해서 이제 뭔가 좀 되는가 보다 했는데… 별 수가 없나보지 뭐.” 이렇게 말을 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으로서 이 뉴스를 본 미국인들에게 챙피하고, 미안 한 생각까지 듭니다.

알고 보니, 여당이 날치기로 미디어 법을 처리 할려고 하자, 이를 저지 하던 야당 사이에서 발생한 폭력이었습니다. 이유가 어떻던 간에, 그래도, 명색이 한국인을 대표 한다는 국회인데…
이런 작태를 보이고도, 버젓이 고개를 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나돌아 다니는 것도 모자라, 자기가 일등 위원이라고 떠벌리는 어리숙함을 용기로 봐야 될지, 아니면, 무식으로 봐야 될지 도데체 혼돈스럽습니다. 나는 아닌데, 상대 당이 무지막지하게 반대를 해서 생긴 일이니, 상대가 사죄하고 뺏지를 반납 해야 할 것이라고, 떠벌리는 책임전가 용기는 또 무엇인지요? 이런 패거리식 용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국민은 또 무엇을 생각 하고 있을 까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아쉬워 하는 시람들이 오히려 쉬쉬하면서, 숨을 죽이는 분위기는 또 무엇입니까! 어쩌다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공화국으로 전락 하게 된 걸까요?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공권력에서 내놓는 많은 대답들 중, 발전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 보다는 광고용이나, 일회 전시용이 많이 나오는 것도 서글퍼고 부끄러운 일 입니다. 자기 성찰을 하여, 담백하게 대처하는 것 보다는 상황에 맞는 말을 찿아내어 이것만 모면하면 된다는 처사는 언제쯤 무너지게 될지? 아니, 그렇게 될 희망이 있는지 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청와대, 국회, 공권력이 서로 뒤질세라 덩달아 앞다투어 이런 일을 일삼고 있는 것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할까요? 툭하면 ‘국민들이 모른다,’ ‘국민들 눈이 너무 어둡다,’ ‘바람 부는대로 가는 것이 국민이다,’ 라고 하면서 자국민을 비판하고, 흉보는 정부와 공권력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러는 것일까요?! 선직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에서 정부와 공권력이 자국민을 상대로 이런 발언을 서섬치 않고 하는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는지 찿고, 또 찿았지만, 아직 찿지 못했습니다. 찿게되면 그래도 위로를 조금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렇게 어지럽고, 무질서 한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을까? 하는 한심한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몇년 전만 해도, 미국 일반 시민들로 부터, ‘한국의 민주주의가 많이 안정적이고 경제도 안정적이다.’ 라는 인사를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들로 부터 걱정하는 인사를 듣습니다. 북한의 현 상황 보다도, 한국의 현 상황이 더 걱정이 되는가 봅니다. 남한과 북한이 위치와 나라 이름만 다를 뿐, 정치와 민주주의를 비교 해 보면, ‘오십보 백보가 아니냐?’ 라고 할까 봐 마냥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는 대한 민국이 소설 “파리대왕” 에 나오는 소국같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지도에 뚜렷이 명기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알려진 나라임을 알리는, 바른 자세를 가진, 현명하고 좋은 한국인들이 한마디 해야 할 때 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결코 TV 뉴스에 나온 것과 같은, 그런 나라가 아님을 알려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참신한 국가관과, 서로를 존중하는 뿌리 깊은 문화와 도덕이 있음을 알릴 때 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의 부끄러움을 씻어야 겠습니다.

Posted by: Ben Kim | June 21, 2009

“너 이것도 몰라? 와 영재교육”

“너 이것도 몰라? 와 영재교육”

지금도 귀에서 들리는듯한 목소리 입니다. “이녀석아, 너는 이것도 모르면서 뭐할려고 앉아 있니? 밥값은 해야지.”

초, 중, 고등학교 시절 약방에 감초처럼 듣던 선생님들의 꾸중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하셨던 꾸중이었겠지만, 듣는 학생 당사자에게는 치료할수 없는 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선생님도, 학생도 이런 꾸중이 학생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라고 봅니다. 근데 이를 들은 학생이 자라면서, 항상 “휴우, 나는 안돼. 잘되는게 없어.” 라고 혼자말로 자탄하는 일들이 많아 지고, 이를 피하기위한 임기응변을 개발하여, 빗기어 갑니다. 결국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성과, 문화생활을 개발하여, 혼자만의 탄식을 하면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는 생활을 합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는 소주를 마시면서, 신세타령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 합니다. 그래야지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립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찌뿌둥하게 다시 출근 합니다. 하루가 찌뿌둥하고, 개운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다시 소주를 마십니다. 이렇게 반복이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상처를 주는 꾸중대신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첫째로, 내가 선생이라면, 학생들이 모른다는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합니다. 모르니 학생이고,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내가 그들의 선생으로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있는것은 배우기 위함이지, 선생의 자존심을 위해 있는것은 아닙니다. 두번째로, 선생인 내가 한번 가르치면 알아야지, 아직도 모르냐고 야단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한번 가르쳐도 학생들이 모를거다 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번 가르쳤다고 이를 이해하고 응용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한번 가르쳤는데도 학생들이 모르면, 이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또 가르치면 됩니다. 세번째로, 학생들이 알고 있는것은 칭찬을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적당한 칭찬입니다. 특정한 학생만 칭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못하는 학생일지라도,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칭찬 해 주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방치하고, 무책임하게 지도해야 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정해진 규칙과, 학생들을 위해 선생인 내가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기위해 일관성있고, 소신있게 지도를 해야 합니다.

이 윈리는 학보모와 지도자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학부모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해 있는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있습니다. 자식을 과잉보호 하거나, 망나니가 되도록 방치하고, ‘오냐, 오냐,’ 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부모인 내가 자식을 위해 정해놓은 목표를 가지고 일관성있고, 지속적인 지도를 해야 합니다. 모르거나, 잘못한일에 대해서, 꾸중을 위한 꾸중을 하는 것 보다는 이해를 시키기위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분명히 해주어야 합니다. 채벌도 창조적이고, 교육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 아주 중요 합니다. 예를들면, 정한 기간동안 비디오 게임 시간을 줄인다던가, TV시청시간을 줄인다던가, 컴퓨터 게임시간을 줄인다던가등입니다. 채벌시간동안 자녀가 뭐를 해야할지 망설이면, 이를 잘 이용해서 같이 책을 읽는다던지, 대화를 한다던지, 같이 가족게임을 한다던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채벌을 정했던지간에, 정했어면 반드시 시행을 해야 합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있는것이 아니라, 지도자인 내가 그들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여 실천을 해야 합니다. 지도자인 내가 하고자 하는데로 안되고, 내 지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나와 동의 하지않고, 반대를 한다고 해서, 권위를 이용해서 강제로 몰아부치는 것은 절대로 않됩니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지배법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화의 기회가 없습니다. 이를 현명하게 잘 이용해서, 대화로 나의 계획을 설명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절충해서 나가면, 이 이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이렇게 할때 지도력이 더욱 탄탄하게 되고, 어떤일이 생길때, 사람들로부터 탄탄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Posted by: Ben Kim | June 7, 2009

그리운 손길

그리운 손길
지금 너나 할 것없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바심을 하면서, 누가 해결책을 내놓고 시원하게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나날을 보내는 일들이 다반사 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정권이 어떻게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한국에서는 이 명박 정권이 어떻게 해 주기를 그래도 은근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운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그리움이 사회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든, 한국이든 아직까지 뽀족한 해결책이 없고, 실업율이 앞으로 더 올라간다는 전망이 경제를 더욱 경직되게 하고 있는 현실 입니다. 지역별로도 많은 가게와 밴츠사업들이 문을 닫고, 심지어 교회 건물이 전세로 나온 지역도 있습니다.

이러한 중에도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그나마 따스하게 녹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 올랜도 플로리다 주에서도 많은 대형 마트에서 특별할인 판매와 무료 시식, 하나를 사면 같은 품목 두개 째는 무료로 가지는 할인등 아주 다양하게 하고 있고, 이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신재품들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아니라, 많은 식당에서도 대 할인을 하고 있습니다. 어른식사를 사면 7살 이하 아이들은 무료, 어른 식사 하나를 사면 두번째 어른 식사는 무료, 인원이 특정 수 이상이면, 그 이상은 무료 (예를 들면, 어른 5인 이상일경우, 5인까지만 돈을 받고 그이상은 무료), 식당별로 날을 정해서 하루 동안 모든 식사를 무료로 하는 등, 아주 다양하고, 짜임새 있게 하고 있습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명절 할인판매와는 아주 다른 느낌을 주는 따스한 일들 입니다. 행사로 하는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하는 할인 행사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년중 행사와는 별도로 하는 “덤으로 하는 나누기” 입니다. 이렇게 하는 가게나 식당, 마트들도 고맙고, 대단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고맙고, 대단한 것 같습니다. 내식구, 내 경제를 생각하면, 왕창사서 가져갈 수도 있는데, 왕창가서 하루 종일 먹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다른 사람, 다른 가족을 생각해서, 더 필요한데도, 절제를 하면서 사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고객들의 마음 씀씀이가, 경직된 경제로 굳어진 마음을 더욱 감동 시키고, 녹이고 있습니다.

이를 아주 성숙된 시민의식이라고 할까요? 여기에서 경제를 다시 살리는 원동력이 나오고, 사회를 더욱 활성화 시키는 힘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나도 여기에 동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형 마트나, 식당처럼 할 수는 없어도, 내가 가진 것으로 나누고 동참하여, “그리운 손길” 이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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